『삼국사기』는 백제 곤지왕(昆支王)을 딱 2번 언급한다. 문주왕 시기인 477년(문주3)이다. ‘4월, 왕이 곤지를 내신좌평으로 삼았다. 7월, 내신좌평 곤지가 죽었다.(夏四月 拜王弟昆支爲內臣佐平 秋七月 內臣佐平昆支卒)’ 곤지의 내신좌평 임명과 사망 기록이다. 그렇지만 『일본서기』는 ‘왕’ 또는 ‘왕자’로 표기하며 비교적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 주로 두 아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동성왕(24대)과 무령왕(25대)이다. 두 왕은 백제 웅진시대를 꽃피운 군주이다.
역사소설로 복원한 곤지왕
필자에게 있어 곤지왕은 매우 특별한 존재다. 곤지왕 소설만 두 번을 썼다. 『곤지대왕』(2001년-절판)과 『백제와 곤지왕』(2016년)이다.
그런데 필자는 첫번째 소설 『곤지대왕』을 집필하는 과정에서 두 번씩이나 곤지왕을 현몽하는 특별한 경험을 했다. 아마도 간절함으로 인해 곤지왕과 직접적으로 연결된 듯 싶다. 이를 바탕으로 김영화 화백이 그린 곤지왕 초상화는 일본 아스카베신사(곤지왕신사)에 기증돼 현재 보관중이다.
또한 필자는 2014년 아스카베신사를 직접 방문해 곤지왕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영감을 얻는다. 그렇게 해서 2016년 두번째 소설 『백제와 곤지왕』이 세상에 나왔다. 이 책은 남당필사본 기록에 근거해 곤지왕의 출생에서 죽음에 이르는 굴곡진 삶의 여정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엮어낸 일종의 전기소설이다.
▲ 곤지왕 초상화 헌액식(가운데) 및 곤지왕 관련 소설. [사진=필자제공]
‘곤지왕 국제네트워크’의 활동
‘곤지왕 국제네트워크’는 2010년경 양형은 박사(오사카 상업대학)에 의해 결성된 한국과 일본의 곤지왕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사람들로 구성된 모임이다. 이 모임은 양박사의 노력으로 다양한 사업을 펼치고 있다.
대표적인 사업으로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개최하는 곤지왕 세미나와 구성원들의 상호 교류방문이 있다. 교류방문의 경우 매년 두차례 이루어진다. 6월경에는 한국측 인원이 일본 아스카베신사를 방문해 제를 올리고, 10월경에는 일본측 인원이 서울 송파구가 주최하는 ‘한성백제문화제’에 직접 참가한다. 특히 송파구는 문화제 기간중 몽촌토성내에 곤지왕 부스를 별도로 만들어 제공하고 있어 서울시민에게도 곤지왕을 널리 소개하고 있다.
▲ 곤지왕
곤지왕 사당 건립을 기원하며
곤지왕이 필자에게 준 선물이 있다. 삼국 역사에 대한 공부이다. 필자는 곤지왕 소설을 쓰면서 곤지왕이 살았던 5세기 백제 역사를 입체적으로 이해하게 됐다. 이후 백제사에 대한 이해는 5세기에 국한하지 않고 백제 7백년 역사 전체로 확장됐다. 더불어 고구려와 신라 역사 전반도 자연스레 공부하게 됐다.
2019년 필자는 「삼국사기 유리창을 깨다」 역사시리즈인 『고구려 역사의 부활』, 『백제 역사의 통곡』, 『신라 역사의 명암』 등 전 3권의 삼국역사를 새롭게 해석하고 조명한 책을 출간했다. 모두 곤지왕이 필자에게 베푼 위대한 축복이자 선물이다.
그럼에도 필자에겐 이루지 못한 간절한 소망이 하나 있다. 일본 아스카베신사(곤지왕신사)에 걸맞는 한국내 곤지왕사당의 건립이다. 장소는 곤지왕이 태어난 서울 송파구(한성-몽촌토성내)와 곤지왕이 사망한 충남 공주(웅진-송산리고분군내) 중 한 곳이 좋을 듯싶다. 이 자리를 빌어 서울 송파구와 충남 공주시가 적극적인 관심을 가져주길 정식으로 제안한다.
우리 고대사를 아끼는 어느 독지가(篤志家)가 나타나 적극적으로 후원해준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만약 곤지왕사당이 건립된다면 필자는 정성을 다해 곤지왕사당에 술 한 잔 따라 고이 올리고 싶다.
미스터리 인물 백제 곤지왕. 천오백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존재한다.
'표준영정제작' 카테고리의 다른 글
[충청일보]백제 제 25대 무령왕 표준영정 이렇게 제작되었다 (0) | 2021.03.04 |
---|---|
[연합뉴스]2년여 고증 끝에 백제 무령왕 표준영정 완성 (0) | 2021.03.04 |
[중앙일보]공주시, 백제 제25대 무령왕 표준영정 제작 완료 (0) | 2021.03.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