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혼의 골프 거리에 대한 욕심도, 스코어에 대한 욕심도 모두 내려놓고 오직 자연과 하나 될 때 최고의 기쁨이 온다. 2019년 작. 김영화 화백
오랫동안 알고 지낸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가 다 돼가는 선배와 만나 차를 마셨다. 젊었을 때 거리가 많이 나가고 늘 싱글 스코어를 보였던 호탕하신 분이다. 그랬던 선배께서 커피 한 모금을 어렵게 넘긴 뒤에 갑자기 “난 말이야, 골프공의 딤플이 싫어”라고 말하는 것 아닌가. 생뚱맞게 골프공 딤플 타령을 할까 싶어 그다음 말을 기다렸다. “골프공 딤플은 말이야 새것일 때는 시선을 한껏 받으면서 멀리 날아가게 해주잖아. 그런데 헌 볼이 되면 딤플 사이에 꾀죄죄하게 때가 끼어서 정말 아무한테도 시선을 받지 못한단 말이야.”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알 것 같았다. 칠십이 가깝도록 앞만 바라보고 살아온 그야말로 ‘보릿고개’를 없애 준 고마운 선배들이시다. 하지만 어느 때부터 사회에서 밀려나고, 힘도 빠지다 보니 자존감을 많이 잃었다고 말씀하신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골프장에 가도 눈치가 보이고 조금 늦게 치나 싶으면 원망을 들을까 봐 대충 치고 온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늙은이들도 마음 편하게 골프 칠 수 있는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덧붙여 비싸지 않고, 여유롭게 산천을 구경하면서 천천히 즐기고 싶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시니어 골퍼를 위한 시스템을 갖춘 곳은 별로 없다. 젊은 골퍼들의 플레이 시간에 맞춰져 있다. 선배는 좀 더 나이 든 골퍼들을 위한 배려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어떨 때는 눈치가 보여 둘이 가서 한 사람 그린피 더 내고 골프를 칠 때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장시간 머무르면서 운동하고 싶으면 태국이나 베트남으로 가서 치고 온다는 것이다.
선배는 외국처럼 혼자 나가서 쳐도 되고, 반려견을 데리고 나가서 치다가 중간에 들어와도 되는 그런 골프장이 생겨났으면 좋겠다고 한다. 은퇴한 실버 층이 크게 늘어나면서 실버산업도 호황기를 맞고 있다. 골프장도 이와 때를 같이 해야 할 것이다. 이분들이 골프장을 찾는 이유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자연과 교감하고 싶어서다.
존 러스킨이 말한 것처럼 인생은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채워지는 것이다.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이 아니라 무엇으로 채워지는 것이다. 고희를 ‘종심소욕불유구(從心所慾不踰矩)’라고 하듯이 선배님은 싱글 성적이 목표가 아니다. 뛰어온 만큼의 속도를 반감시키면서 천천히, 아주 천천히 불어오는 바람을 맞고 싶을 뿐이다.
이종현 시인(레저신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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